
《폭싹 속았수다》 1부
"살면 살아져" – 절망의 끝에서 건네는 가장 단단한 말
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(고생했다는 뜻인건 알지만) 말 그대로 ‘폭싹’ 속아 넘어가도 괜찮은 이야기다.
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, 시간이 갈수록 그 안에 담긴 정서와 메시지는 묵직해진다.
그 중심에는 제주 해녀 애순의 삶이 있다.
그리고 그 삶이 완전히 무너질 것 같은 순간, 죽은 줄만 알았던 어머니가 꿈속에서 던진 한마디가 있다.
"살면 살아져."
짧고 단순한 말이다.
하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, 시청자들은 고개를 떨궜던 경험 하나쯤 떠올리게 된다.
진짜 아무것도 안 보일 때, 도망갈 수도 없고 끝낼 수도 없어서 그저 ‘사는 수밖에’ 없었던 때.
그 끝에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던 시간.
드라마는 이 짧은 대사 안에 시간을 버티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‘묵시적 연대감’을 담는다.
그 누구도 쉽게 위로하지 않고, 그 누구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.
그저 말한다.
살기만 해도 언젠가는 살아진다고.
그 말은 대책 없는 낙관이 아니라, 바닥을 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다.
죽어라 팔다리를 흔들면 하늘이 보여 – 버티는 기술에 대하여

같은 장면 속에서 어머니는 이어서 말한다.
“죽어라 팔다리를 흔들면 꺼먼 바다 다 지나고 반드시 하늘 보여. 반드시 숨통 틔여.”
이 말은 ‘물질’을 하는 제주 해녀의 삶에서 온 것이다.
숨을 참고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가야만 전복이나 해산물을 건져올 수 있고,
그 깊은 물속에서 당황하거나 포기하면 그대로 익사하게 된다.
드라마는 이 해녀의 생존 원리를 삶의 은유로 확장한다.
누구도 구해주지 않는 현실에서, 버티고 흔들고 발버둥치는 건 결국 자기 몫이라는 것을.
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팔다리를 흔들라는 것이다.
그러면 언젠가 위를 향해 치솟는 숨구멍 하나쯤은 보일 거라고.
이 말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‘용기 내라’, ‘견뎌라’ 같은 뜬구름 잡는 말이 아니라
생존의 물리적 메커니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.
그리고 그런 진심은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.
드라마가 건네는 위로 – 우리는 모두 숨을 참고 살아간다
이 두 문장은 함께 보면 더 강력해진다.
살아만 있어도 언젠가는 살아지고, 그저 발버둥치기만 해도 언젠가는 숨통이 트인다는 것.
이 말들은 결국 “모든 고통은 끝이 있다”는 말을 돌려 말하는 방식이다.
하지만 그 말투가 다르다.
드라마는 함부로 사람을 위로하지 않는다.
“괜찮을 거야”라고 말하지 않고, 그런 날도 있다”고 말한다.
그리고 그런 날이 왔을 때 어떻게 숨을 참고,
어떻게 흔들면서 버텨야 하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.
그게 이 드라마의 따뜻함이자 진심이다.
그리고 사실… 이건 드라마 안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니다.
우리도 현실에서 그렇게 살고 있다.
일이 안 풀리고, 사람에게 상처받고, 계획은 다 어긋났는데 계속 살아야 할 때.
사실은 ‘살아져서’ 살고 있는 사람들, 정말 많다.
그리고 그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, 대단한 일이다.

오늘을 버티는 당신에게 – 살아만 있어도 괜찮다는 말
《폭싹 속았수다》는 이렇게 말한다.
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.
지금은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.
어쩌면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.
하지만 그게 절대로 부족하거나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.
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
혹시라도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,
부디 이 두 문장을 마음속에 넣어두길 바란다.
"살면 살아져."
"죽어라 팔다리를 흔들면 하늘 보여."
이 문장들은, 어쩌면 그 누구보다 당신이 해낸 걸
말없이 칭찬해주는 방식일지도 모른다.
버티고 살아낸 오늘이,
그냥 지나가는 하루가 아니라
어마어마한 생존의 증거라는 걸,
잊지 않았으면 좋겠다. 🌿